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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책을 냈으면 좋겠어

내가 디지털 에이전시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

오래된 메모를 발견했다.

2017년 여름, 나는 태평양의 한 섬에 있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문장에 밑줄이 쳐져 있다. 맥주를 마신 탓에 파도와 석양이 비현실적이다.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달과 6펜스를 읽었기에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아닌 낙서였을 것이다. 휴양지의 나무를 그린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 가까워지자 휴양지의 그림을 잊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휴양지에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결심이 잊혔다. 메모는 "왜 예술을 하는가?"로 끝났다.

 

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취하기를 수백 번 반복하니 서른 중반이 되었다. 오늘 해야 할 업무 따위를 리스팅 한다. 갑자기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메모가 떠올랐다. 나는 직장인이기에 "왜 예술을 하는가" 질문은 "왜 일을 하는가"와 같아 보였다.

10년 동안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나는 매일 수 많은 선택을 했다. 이직한 회사의 인력이 급격히 늘었다. 회사의 성장에 내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생각에 기뻤다. 나는 회사와 나를 동일시했다.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애정이 컸다. 회사에는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문화가 있었다.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나는 성장과 혁신은 사소한 의견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인력이 많아지면서 의견은 쏟아졌다. 나는 쏟아지는 의견이 버거웠다.  

누군가의 의견은 논리적이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만이 생겼지만 최선을 다해서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많은 의견들이 반영되지 않고 사라졌지만, 의견은 계속 필요했다. 의견들을 듣고, 의견에 답변하고, 의견 중에 실행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이 나의 일이 됐다. 글은 간단하게 정리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왜 그런 선택했는지 기록이 필요하다. 일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나는 선택의 이유를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나의 선택을 기록하면 방향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선택의 이유를 기록하고 돌아보면 방향이 나오고, 월급 이외의 일의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기록하면 치유된다는 말도 기억났다. 나는 왜 디지털 광고 대행을 직업으로 선택했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나는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가? 나는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됐다. 디지털 기술 지향은 방향이고, 트렌드가 됐다. 에이전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적인 방향이다. 인간의 경험과 반복 업무를 기술로 자동화한다. 그렇게 생산성을 올린다. 나는 방향에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자동화는 어렵다.  나는 에이전시에서 차별화된 무언가를 원한다. 그것이 크리에이티브 일수도 있고, 에이전시의 경험과 노하우 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차별화가 기술이었으면 한다. 제안서를 고민하다 보면 기술적 요소들을 넣는다. 그게 차별화의 길이고, 고객사가 그걸 원하는 걸 아니까. 100%는 아니지만 그런 선택은 PT를 승리로 이끈다. winnging sprit 같은 것이 회사의 분위기를 바꾼다. 선택이 승리가 되었기에 나쁘지 않다. 구성원들도 좋아하고, 회사는 돈을 번다. 최선의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광고를 업으로 선택한 옛날을 생각했다. “꿈이랄까? 결의랄까? 보이지 않는 것도 타고 있다.” JR 광고를 보고 나는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오길비의 '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읽었고, 크리에이티브한 광고를 동경했다. 화려하고, 멋진 걸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이 고객사의 비즈니스를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작은 부띠끄 에이전시를 다녔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나는 내가 만든 크리에이티브가 선택받길 원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실력을 탓하고 퇴사했다. 내가 다시 들어간 디지털 광고 회사는 세일즈를 베이스로 한 회사였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점점 커졌다. 회사는 성장했다. 애드테크는 점점 발달했고,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나왔고, 플랫폼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시기였다. 마케팅도 디지털 베이스가 되고 있고, 디지털 측정 기술은 정교해지고, 데이터 분석가가 선망의 직업이 되고 있었다. 

 

내가 디지털 에이전시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고객사의 선택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디지털 쪽에 있기로 한 선택은 시장이 성장하고 있기에 부분적으로 옳았다. 운이 작용했지만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의 역량보다는 나의 선택 때문에 성장하는 산업에 있을 수 있었다. 과거와 오늘의 나도 제안서에 들어갈 내용이 선택되길 바란다. 내가 다니는 에이전시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선택받고 싶다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제안을 고객사가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나와 팀이 증명받길 원했다.

고객사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나는 장기적 방향을 제안하고, 기술의 유효성을 설명했다.  

나는 선택 받기 위해 디지털 에이전시를 직업으로 선택했다.